어제 연아 경기를 반드시 보겠노라고 12시 땡하고 자리에 누우며 두시 반 알람을 맞춰놨다. 잠이 스르르 오던 참에 창문이 심하게 덜컹거려서 겁이 날 정도로 바람이 거세져서 깼는데 대략 한 시간 동안 잠을 못 이뤘다. 두시 반에는 못 일어나고 결국 세시에 겨우 눈을 떴는데 TV를 틀어보니 먹통이었다. 아무래도 케이블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는데 모니터를 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아서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누웠다. 선잠에 들었는데 어렴풋이 엄마가 터벅터벅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. 그때 TV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. 그리고 엄마의 한숨. "다 끝났네, 지금 몇 시냐... 네시 반?" 다시 한 시간 잠을 설쳤다. 알람소리에 깨서 일어나 보니 아예 정오까지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어둑어둑한 가운데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. 버럭 짜증이 치미는데 어쩐지 어디다가 화풀이할 것만 같아서 일단 머리부터 감았다. 약도 떨어졌고 이미 예약도 해 놓은 상태라 별 수 없었다. 나중에 혹시나, 하는 마음에 인터넷 창을 열었다가 미묘한 언어로 '거절' 당하니 없던 힘마저 쑥 빠지는 것만 같았다.
그런데 연아가 1등 먹었대.
문득 깨달았다. 그 사이에 비가 완전히 그쳐서 따스한 햇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. 그래, 재방송을 보면 되지, 나 쇼트 안 보니까 오히려 더 잘 한 것 같기도 하니 혹시 모르니까 그냥 프리 생중계는 관두고 내일 볼까... 하고 급방긋. 잠을 설친 만큼 아침은 든든하게 먹고 나가야겠다. 기온 떨어졌을 테니 옷 잘 챙겨입고 가야지. 내 단순한 마음은 이렇게 쉽게, 그럭저럭 평화를 되찾아갔다.
하지만 역시 그 '미묘한 언어'에 대한 이 억울한 감정은 쉽게 날아가지 않았다. 이건 진짜 쿨하게 넘어가기 힘든, 제법 예민한 문제다. 되지도 않는 희망을 주는 그 멘트에 넘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. 반성하라, *****. (작은 마음이라 한 글자도 못 적겠고.)


덧글
hj 2009/10/20 23:30 # 삭제 답글
연아에 대한 열정 대단하구나;; 나로서는;; 새벽에 일어나서 보지는 못할 것 같아. (물론 동영상도 안 본 인간) 요 며칠 새벽에 천둥 번개 장난 아니었지. 난 밤에 오는 건 그리 싫어하진 않지만 말야. 어쩐지 잠이 잘 온다는 느낌이라서... 외출 안 하는 날 비오는 것도 좋아해. :) 오히려 난 비 그친 바로 다음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.... 여전히 습한 기운이 남아 있고 바닥은 젖어 있는 가운데 햇살이 비치는 게 언발란스해서일까나.
비스코티 2009/10/21 21:19 # 답글
열정은 무슨; 결국 내가 안 보니까 실수 한번 안 하길래 (응?) 프리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 놓고서 TV 앞에서 갈등하다가 () 방으로 돌아가 누웠다. 내 덕이라니까 (뭐라는 거야) 난 밤새 보슬비 내리는 게 좋고 너랑 반대로 햇살 비치는 비온 뒤의 청량한 공기를 몹시 좋아해. 문제는 비가 조금 오다 말아서 아스팔트에서 이상한 냄새만 나는 그런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. 그리고 외출해야 할 때 내리치는 소낙비.